그 불빛
- 김신용(1945~ )

청계천 노점에서 막걸리 몇 잔에 얼큰해져 돌아오는 길
꼭 거쳐야 할 경유지인 것처럼 그 불빛을 찾아 들어,
글만 쓰면 배가 고파진다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주제에 글을 써야 하느냐고,
--, 술주정 같은 푸념을 했을 때
그 서점의 여자는 묵은 책의 먼지를 털 듯 말했었다.
쓰고 싶은 사람에게 글을 쓰게 하세요--. 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리 속은 하얗게 비어 왔었고
눈앞이 아득히 흐려졌었다
언제부터, 왜, 시작(詩作)에서 내적 동기보다 외부 여건이나
환경이 더 중요한 문제가 된 것일까. 시인 라포르그는 “삶은
실제로 비열한 것이지만, 다행히도 그것이 시에서 나타날 경
우에는 카네이션만큼이나 아름다운 것이다”고 했지만, ‘카네
이션’의 의미를 겨우 생각한 오월에도 삶은 더 비참하게 느껴
진다. 무지와 나태를, 아니 용기의 부족을 ‘아현동 굴다리 밑
’의 ‘그 불빛’은 이 밤도 준엄하게 꾸짖는다. 궁극(窮極)은 멀리
있지 않다. <백인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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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5.28.토요일.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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