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문
-이영혜(1964~ )

수심(愁心)만 가득한
수심(水深)을 알 수 없는 저수지 한 가운데
달이 빠졌다
저 달덩이가
다 가라앉을 때까지
나 평생
파문을 끌어안고 살리라
시는 이미지로 말한다. 르장드르(Legendre)의 말마따나
“우리 사이에서 우리는 (이미) 이미지인 것이다”. “저수지”
“달덩이”의 두 이미지가 순간적으로 만나 이루는 “파문”을 보라.
깊이를 알 수 없는 “수심(愁心)”은 존재를 늘 파문 상태에 놔둔다.
근심이 완전히 가라앉는 것은 유감스럽게도 (죽음이라는) 종점의
시간에나 가능하다. “평생 파문을 끌어안고 살리라”는 선언은,
근심을 아예 존재의 일부로 삼음으로써 그것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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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5.25.수요일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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