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마을 486

가을의기도/가을엽서

가을의 기도 –남정림 주여 가장 풍성한 가을에 가장 가난한 마음을 오롯이 허락하소서 욕심없는 풀꽃 하나가 청정한 가을 햇살을 온몸으로 누리거늘 텅빈 들판을 다 누비는 이름 없는 작은 새처럼 자유의 날개를 펴게 해주소서 더 올라갈 일 없어 옆으로만 넓어져 간 벌판처럼 황금빛 가슴마저 내려 놓게 하소서 가을 엽서-안도현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누어 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 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 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가을시/국화옆에서

국화옆에서 –서정주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리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내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가을걷이 –강인호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풀벌레소리 엄마의 노래랑 한숨도 따라왔으리 햇살 한 줌 배 내음도 묻어왔으리 자식 보고픈 그리움도 담겨왔으리 보모님이 가을걷이를 보내주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