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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가 있는 아침] 숲에 관한 기억 / 나희덕

파라은영 2015. 5. 18. 16:13

[시가 있는 아침] 숲에 관한 기억 [중앙/ 2015.05.18]



    숲에 관한 기억 - 나희덕(1966~ )


    너는 어떻게 내게 왔던가?

    오기는 왔던가?

    마른 흙을 일으키는 빗방울처럼?

    빗물 고인 웅덩이처럼?

    젖은 나비 날개처럼?

    숲을 향해 너와 나란히 걸었던가?

    꽃그늘에서 입을 맞추었던가?

    우리의 열기로 숲은 좀더 붉어졌던가?

    그때 너는 들었는지?

    수천 마리 벌들이 일제히 날개 터는 소리를?

    그 황홀한 소음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사랑은 소음이라고?

    네가 웃으며 그렇게 말했던가?

    그 숲이 있기는 있었던가?

    그런데 웅웅거리던 벌들은 다 어디로 갔지?

    꽃들은, 너는, 어디에 있지?

    나는 아직 나에게 돌아오지 못했는데?


온 것은 가고 간 것은 반드시 돌아온다. 봄, 벚꽃, 달, 작약, 기차, 꽃게가 떠나간다. 떠난 것들을 기다린다. 더 많이 기다리는 자는 더 많이 사랑하는 자다. 더 많이 사랑하는 자는 항상 덜 사랑하는 자에 예속되는 법이다. 더 많이 사랑하는 자들은 대수롭지 않은 늦어짐에도 괴로움에 빠지기 일쑤다. 그들은 기다림이라는 나쁜 주문(呪文)에 걸려 생을 낭비한다. ‘너’는 정말 내게 오기는 왔었던가? 빗방울처럼, 웅덩처럼, 젖은 나비 날개처럼 왔다가 떠나갔는가? 수천 마리 웅웅거리던 벌들, 사방에 지천으로 피어 “조카딸년들이나 그 조카딸년들의 친구들의 웃음판”(서정주) 같던 꽃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장석주·시아침>
출처 : 설지선 & 김수호
글쓴이 : 설지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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