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마을/좋은 詩 감상

전갈/류인서

파라은영 2015. 5. 12. 09:19

전갈

   류인서(1960~ )

 

봉투를 열자 전갈이 기어 나왔다

나는 전갈에 물렸다

소식에 물렸다

전갈이라는 소식에 물렸다

그로부터 나는 아무도 모르게 혼자 빙그

레 웃곤 하였다

축축한 그늘 속 아기버섯도 웃었다

곰팡이들도 따라 웃었다

근사하고 잘생긴 한 소식에 물려 내 몸이

붓고 열에 들떠 끙끙 앓고 있으니

아무튼, 당신이 내게 등이 푸른 지독한 전

갈을 보냈으니

그 봉투를 그득 채울 답을 가져오라 했음

을 알겠다

긴 여름 다 허비해서라도

사루비아 씨앗을 담아 오라 했음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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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5.12.화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