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마을/신문에서읽는詩

아들에게/문정희

파라은영 2016. 8. 19. 14:13

아들에게 ― 문정희(1947∼ ) 

아들아 
너와 나 사이에는 
신이 한 분 살고 계시나보다. 

왜 나는 너를 부를 때마다 
이토록 간절해지는 것이며 
네 뒷모습에 대고 
언제나 기도를 하는 것일까? 

네가 어렸을 땐 
우리 사이에 다만 
아주 조그맣고 어리신 신이 계셔서 
(…) 
이젠 쳐다보기만 해도 
훌쩍 큰 키의 젊은 사랑아 

너와 나 사이에는 
무슨 신이 한 분 살고 계셔서 
이렇게 긴 강물이 끝도 없이 흐를까?
 
  
대한민국에는 아주 많은 아들들이 살고 있다. 갓 태어난 아가부터

할아버지까지, 대략 5000만 인구의 반절이 남성이고 누군가의 아

들이다. 그러니까 문정희 시인의 이 시는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을

향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시를 진짜로 이해할 사람은

아들들보다는 어머니들이다. 아들의 경우에는 시의 모든 내용이 마

음속에 사무치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원래 아들이란 어머니의

마음을 짐작할 뿐, 전부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모든 어머니들은 이 시를 읽으면서 단박에 자기 자신의 모

습을 발견하게 된다. ‘아들아’라는 첫 구절을 읽는 순간 내 아들의 얼

굴이 떠올라 벌써부터 마음이 동요될지 모른다. 어머니에게 아들의

이름은 참 간절했다. 그를 위해 기원하고 기도하는 시간은 절절했다.

어려서는 근거 없이 든든했고, 까닭 없이 사랑스러웠으며, 절대적으

로 귀했다. 아들은 커가면서 주로 뒷모습만 보여주었지만 그것마저

사랑했다. 그렇게 어머니의 기도와 사랑과 시선을 받으며 아들의 어

깨는 넓어져 갔다.  

시인의 표현에 의하면 그와 나 사이에는 위대한 신이 사는 것 같았다.

이 말에 많은 어머니들이 공감하실 것이다. 아들은 믿고 의지하고 지

키는 종교 같았다. 그러니까 아들은 이미 축복받은 사람이고, 어머니

는 이미 거룩한 사람이다.

어머니의 사랑을 확대해서 생각한다면 누구든 귀한 자식이니 세상에

귀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이 시를 읽으면 왜 학대나 괴롭힘이라는 말,

 가혹 행위나 폭력이라는 행동을 미워해야 하는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종교 같은 사람이고, 종교 같아야 할 사람이다. 그러니까 누구든 함부

로 하지 말 일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

2016.8.19.금요일.동아일보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시(詩)가 있는 마을 > 신문에서읽는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9월도 저녁이면/강연호  (0) 2016.09.02
차 한잔/길상호  (0) 2016.08.31
칠백만원/박형준  (0) 2016.08.12
능소화/최재영  (0) 2016.08.11
땅의 은하수  (0) 2016.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