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마을/신문에서읽는詩

능소화/최재영

파라은영 2016. 8. 11. 17:44

능소화
- 최재영(1965~)

 

기사 이미지

 

한동안 넝쿨만 밀어 올리던 능소화나무
좁은 골목길 담장에 기대어
황적(黃赤)의 커다란 귀를 활짝 열어젖힌다
한 시절 다해 이곳까지 오는 길이
몽유의 한낮을 돌아 나오는 것 같았을까
지친 기색도 없이 줄기차게
태양의 문장들이 돋아난다
서로를 의지하는 것들은



보지 않아도 뒷모습이 눈에 익는 법
오랫동안 등을 맞대고 속내를 주고받던 담장이
울컥, 먼저 뜨거워진다

(…)

능소화의 영어 이름은 트럼펫 크리퍼(trumpet creeper)다.

 담장을 기어오르며 붉은 트럼펫을 불어대는 능소화들의 축

제로 온 세상이 뜨겁다. 8월, “태양의 문장들”이 하늘에 울려

퍼진다. 뒤에서 그것들을 키워온 담장도 “울컥 뜨거워진다.”

 계절마다 새로운 ‘신의 선물’이 핀다.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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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8.11.목요일.중아일보 시가 있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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