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마을/신문에서읽는詩

차 한잔/길상호

파라은영 2016. 8. 31. 09:48
차 한 잔
- 길상호(1973~)

 
기사 이미지

 

묵언默言의 방
수종사 차방에 앉아서
소리 없이 남한강 북한강의 결합을 바라보는 일,
차통茶桶에서 마른 찻잎 덜어낼 때
귓밥처럼 쌓여 있던 잡음도 지워가는 일,
너무 뜨겁지도 않게 너무 차갑지도 않게
숙우熟盂에 마음 식혀내는 일,
빗소리와 그 사이 떠돌던 풍경 소리도
다관茶罐 안에서 은은하게 우려내는 일,
차를 따르며 졸졸 물소리
마음의 먼지도 씻어내는 일,
깨끗하게 씻길 때까지 몇 번이고
찻물 어두운 내장 속에 흘려보내는 일,
퇴수기退水器에 찻잔을 헹구듯
입술의 헛된 말도 남은 찻물에 소독하고
다시 한 번 먼 강 바라보는 일,
나는 오늘 수종사에 앉아
침묵을 배운다

침묵이 그리운 것은 언어가 존재를 압도할 때, 즉 수다가

소음이 됐을 때다. 존재의 집인 언어(하이데거)를 텅 비움

으로써 현존재(現存在·Dasein)에 더 가까이 가는 것. “차

한 잔”의 길.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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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8.31.수요일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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