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시미즘이 브랜드가 되어버린 시대에 희망을 말하기란 얼마나 힘든가.
오죽하면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에 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고
말했을까. 희망을 ‘불온한’ 단어로 만들어버린 시대에 이 시는 청량한
산소 같다. 씨앗에서 “숲이 했던 약속”을 기억하다니. 숲의 약속을 잊은
사람들에게 씨앗은 발아되지 않는다. (다가올 숲에 대한) ‘믿음’이 씨앗
을 터뜨린다.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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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3.24. 목요일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