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마을/신문에서읽는詩

숲/김재진

파라은영 2016. 3. 24. 16:26


- 김재진(19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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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위에 올려놓은 씨앗 한 움큼
지금 나는 손바닥 가득 숲을 올려놓은 것이다.
바람이 산수유 열매를 기억하고
구르는 시냇물이
머리카락 단장하듯 나무뿌리 매만질 때
숲이 했던 약속을 맨살로 느끼는 것이다.
별이 나오는 언덕
새소리 풀어놓는 저녁을 위해
농부의 식탁이 푸르게 물드는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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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모더니즘 이후 현세(現世)는 작가들에게 대체로 악몽이었다.

페시미즘이 브랜드가 되어버린 시대에 희망을 말하기란 얼마나 힘든가.

오죽하면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에 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고

말했을까. 희망을 ‘불온한’ 단어로 만들어버린 시대에 이 시는 청량한

산소 같다. 씨앗에서 “숲이 했던 약속”을 기억하다니. 숲의 약속을 잊은

사람들에게 씨앗은 발아되지 않는다. (다가올 숲에 대한) ‘믿음’이 씨앗

을 터뜨린다.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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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3.24. 목요일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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