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3.22.목요일.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잠
- 게오르크 트라클(1887~1914)

하얀 잠이여, 너는
무섭고 지겨운 미지의 독!
노을에 물든 오묘한 뜨락은
뱀과 나방과
거미와 그리고 박쥐로 가득하다.
나그네여! 길 잃은 네 그림자가
낙조를 서성이고
비애의 눈물의 바다에
무서운 해적선 떠 있다.
무너져가는 강철의 도시,
그 밤 하늘가에
하얀 새들이 날개를 친다.
19세기 후반에 태어나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진 뒤 몇 달 안 되어
전쟁터에서 사망한 오스트리아 시인 트라클은 20세기 문명에서
몰락의 징후를 읽었다. “하얀 잠”은 근심과 불안으로 가득 찬 그의
무의식을 보여준다. 인류는 길을 잃었고 “해적선”이 상징하는바
폭력의 시대가 다가왔다. 그의 느낌대로 연이어 세계대전이 일어
났다. 화려했던 “강철의 도시”들도 무너졌다. 시는 시대의 징후를
읽는 민감한 안테나다.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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