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서울 올라와 만난 친구가
이거 한번 읽어보라며 옆구리에 푹 찔러준 책.
헤어져 내려가는 고속버스 밤차 안에서
앞뒤로 뒤적뒤적 넘겨 보다 발견한,
책갈피에 끼워져 있는 구깃한 편지봉투 하나.
그 속에 빳빳한 만 원짜리 신권 다섯 장.
문디 자슥, 지도 어렵다 안 했나!
차창 밖 어둠을 말아대며
버스는 성을 내듯 사납게 내달리고,
얼비치는 뿌우연 독서등 아래
책장 글씨들 그렁그렁 눈망울에 맺히고.윤중목 시인은 등단(1989년) 후 무려 26년이 지난 얼마 전에 첫 시집을 상재했다. ?밥격?이라는 시집 제목에서 드러나듯, 그의 시들은 생계의 사연들로 가득하다. 푸시킨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고 했으나, 그러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모든 도움이 끊긴 생계는 ‘마지막 터미널’ 같은 것이다. 그 길에서 책갈피에 슬쩍 끼워 넣은 “만 원짜리 신권 다섯 장”은 얼마나 큰 위로인가. 이런 “문디 자슥”들이 많은 세상이 천국이다.
<오민석 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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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 10.목.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