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마을/신문에서읽는詩

바람의 말/마종기

파라은영 2015. 9. 22. 09:46

바람의 말

     시인 : 마종기(1939~  )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한 하나 심어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 날아 가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의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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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9.22.화.중앙일보 장석주시인의 시가 있는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