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척
천수호(1964~ )
갓 결혼한 신부가 처음 여보, 라고 부르는
것 처럼
길이 없어 보이는 곳에서 불쑥 봉분 하나
나타난다
인기척이다
여보, 라는 봉긋한 입술로
첫 발음의 은밀함으로
일가를 이루자고 불러 세우는 저건 분명
사람의 기척이다
기어코 여기 와 누운 몸이 있었기에
뒤척임도 없이 저렇게 인기척을 내는 것
새 신부적 여보, 라는 첫말의 엠보싱으로
저기 말랑히 누웠다 일어나는 기척을
누가 올 것도 누가 갈 것도
먼저 간 것도 나중 간 거도 염두에 없이
지나가는 기척을 가만히 불러 세우는 봉분의 인기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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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9.7.월 중앙일보 장석주시인의 시가있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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