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의 글/파라의 글

꿈과 희망 그리고 미래

파라은영 2012. 4. 7. 19:56

 

꿈과 희망 그리고 미래

 

 

 

대구미래대학에는 아침마다 엄마와 딸이 나란히 등교하는 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교수님들은 “우리대학 역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면서 진심으로 축하를 해 주었다. 딸아이 또래들은 부러워하면서 “정말 보기 좋아요, 대단해요”하면서 칭찬들이다. 어떤 친구들은 "진짜 엄마와 딸 맞나요? 하면서 몇 번씩 물어 보기도 한다. 그렇다 내 딸은 대구미래대학 애니메이션과 2학년이다. 나는 이 대학의 학부모이면서 만학도 이다. 딸아이는 고향 서산에 있는 여자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유일하게 만화를 좋아했고 그림 그리는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였다. 아이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일도 그의 없고,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혼자 그림 그리는 일에 만 열중하였다. “엄마! 난 이다음에 만화가가 될 거야! 애니 만화를 그리고 지도 받을 수 있는 대학을 가고 싶다.”라고 딸아이가 입버릇처럼 말했다. “전문가에게 그림지도를 받고 싶다”고도 했지만 입시를 위한 미술학원비가 만만치 않게 비싸고 우리가정 형편상 학원에 보내줄 돈도 없고 일반대학을 간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딸아이에게 꿈이 생겼다. 만화를 마음껏 그릴 수 있는 대학에서 ‘그림공부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고향인 서산과 경산은 아주 먼 거리이지만 유학하는 기분으로 대구미래대학 애니메이션과를 지원하게 되었다.

 

  “내가 대학에 다닐 수 있고 좋아하는 만화를 마음껏 그릴 수 있게 되었고 그림공부를 계속 할 수 있게 되어 너무 감사하다”고 좋아했다. 그러면서 밤을 새워 작업을 하고 무리했는지 수업중에 쓰러져서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가게 되어 모두를 놀라게 하는 일도 있었다. 아프면서도 여러 공모전에 작품을 내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하나은행 달력공모전, 서울 국제 시카프 애니 공모전등 큰 상은 못 받았지만 삼성 현 미술대전에서는 입상하기도 했었다. 딸아이의 꿈은 점점 더 커져가고 있었다. 자기의 그림을 이해해 주고 공감해주는 좋은 친구들이 아주 많아졌다. 그리고 자상하게 관심을 갖고 지도해 주는 교수님들이 있어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표정이 밝아지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릴 줄도 알고, 자기가 해야 할일이 있고, 목표가 생겼다. 올해 대학2학년이 되는 딸아이는 4년제 미술대학에 편입하려고 열심히 공부하는 중에 있다. “아이들의 그림을 지도해주는 미술교사가 되는 것이 딸의 꿈이라고 했다. 조금씩 꿈이 자라면서 건강도 좋아졌다.

 

 작년에는 혼자 지내는 딸아이의 건강이 걱정되고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나 염려되어 딸을 보려고 서산에서 경산에 있는 대구미래대를 자주 오갔다. 꿈과 희망이 가득한 젊은 이십대 대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안에는 나도 모르게 어떤 꿈이 그려지고 있었다. 언젠가는 아이들이 내 품을 떠나게 될 텐데, 그때 나도 대학에서 공부를 할 수 있다면 막연한 꿈을 꾸고 있었다. “이루고자하는 열망이 간절하면 꿈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사회복지사가 되어 나와 같은 장애인들을 위하여 상담자가 되고 실제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러나 현실은 아직 둘째아이가 고등학생이고 대학진학과 그 뒷바라지를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지도 30년이 지났고, 노안으로 눈도 잘 보이지 않고, 몸도 불편하다. 이런 내가 대학공부를 할 수 있을까? 두려움도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해도 엄청나게 비싼 등록금을 정상적으로 내고 다닐 수는 없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대학에 다니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어릴 때 나의 꿈은 교육대학를 가고 싶었고 국어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가난했던 친정부모는 나에게 “장애인이 공부를 많이 하면 눈만 높아져서 시집도 못 간다.”며서 재능도 없는 양재기술을 배우게 하였다. 세월이 흘러도 대학의 꿈을 버리지 못한 나는, 막내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 방송통신대를 입학하였다. 그때는 아이들도 어리고,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입장이라 중도에 꿈을 접어야 했었다. 이제 아이들이 성장하여 큰아이가 대학생이 되고 작은 아이가 고3학년이 되었다. 어느 날 아들이 말했다 “엄마! 나는 군 특성화반을 지원 했어 직업군인으로 부 사관이 되어 군복무도 하고 돈도 벌고 대학공부도 하겠다고 했다. 아들은 글 쓰는 재능이 뛰어나고, 음악을 좋아하여 드러머로 활동하며 학교에서는 밴드 부 리더이기도 했다. 그래서 국문과나 실용음악을 하고 싶어 했고, 하기를 바랐는데, 우리가정이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고 부모에게 부담을 안주려고 하는 속 깊은 아들의 마음을 생각하니 눈물 나고 마음이 아프다.

 

 가족회의를 했다. 엄마를 대학교에 보내기로, “엄마가 대학공부를 하겠다는 생각이 있고, 어차피 할 거 라면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하라고”했다. 집과 가까운 대학교 야간반에 사회복지과가 있었다, 낮에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자리를 알아보았지만 마땅히 일 할 곳이 없었다. 그러던 중에 딸아이 문제로 교수님들과 상담을 하던 중에 사회복지를 공부하려면 우리대학교에서 딸과 함께 공부를 하면 여러 가지 장학혜택을 받을 수 도 있고 딸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고 하였다. 내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데, 또래친구들 중에는 손자 손녀를 보고 할머니가 된 친구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딸과 함께 꿈에도 그리던 대학생이 되었다. 이십대 청년들과 같은 열정과 꿈을 꾸고 있다. 이건 분명 꿈이 아니다. 꿈같은 현실이다. 대구미래대학교 사회복지과 2010년 3월에 입학하여 신입생이 되었다. 젊은 친구들과 함께 강의도 듣고, 토론도하고, 함께 점심을 먹고, 운동도 하고, MT도 함께 갔다. 친구들은 나를 이모라고 부른다. ‘아우름’이라는 봉사동아리에 가입을 했다. 동아리 친구들과 자원봉사도 함께 나갔다. ‘노인재가지원센터’에서 어르신들과 그림 그리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청소도 했다. 몸은 조금 피곤했지만 어르신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뭔가 좋은 일을 했구나! 내 마음이 더 가볍고 행복했다. 이런 날 밤에는 잠도 잘 잤다. 이제 내게는 잠 못 이루는 밤은 없을 것이고, 할 일 없이 집에서 빈둥거리며 시간 낭비 할 겨를이 없다. 내게 주어진 나의 삶은 내가 개척해 나갈 때 진정한 행복이 오는 것 같다. 현재 나는 대학생으로써 해야 할 공부가 있고 사회복지사가 되어 이 사회의 약자와 소외계층 사람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어야 한다는 꿈이 있다.

 

 딸아이도 엄마의 열심을 힘입어 경쟁이라도 하듯이 늦은 시간까지 그림을 그리고 공모전 준비에 바쁘다. 그러나 두 사람의 교재대금과 학생회비, 그리고 생활비가 우리모녀를 힘들게 했다. 주말이 되어도 아들과 남편이 있는 집으로 갈 수가 없다. 거리가 멀어서 경비를 아끼려면 한 달에 한번정도 집에 가는데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아들에게 늘 미안하다. 딸은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여기저기 알아보려 다니기도 했지만, 연고가 없는 낮선 지역에서 아르바이트자리 구하기도 어려웠지만 공부하면서 일을 한다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젊은 이십대와 겨루어 조금도 뒤지지 않은 열정과 두 배의 노력으로 대학과정을 이수 할 것이며 당당하게 자립하여 나와 같은 장애인들에게 따뜻한 사랑과 사람냄새 풀풀 나는 아름답고 멋진 사회복지사가 될 것이며, 나를 통하여 만학도 들에게 꿈과 희망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2010년 5월 대구미래대학 캠퍼스에서....은희영 씀

 

'파라의 글 > 파라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집(家)에 대한 생각  (0) 2013.05.13
사은회 그리고 2년을 돌아보며  (0) 2011.12.19
경주여행  (0) 2011.12.19
제2의 사춘기  (0) 2011.05.12
나이를 묻는 사람들에게  (0) 2011.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