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마을/좋은 詩 감상

사람과 함께 이 길을 걸었네 / 이기철

파라은영 2009. 10. 1. 10:56

사람과 함께 이 길을 걸었네 / 이기철


사람과 함께 이 길을 걸었네
꽃이 피고 소낙비가 오고 낙엽이 흩어지고 함박눈이 내렸네
발자국이 발자국에 닿으면
어제 낯선 사람도 오늘은 낯익은 사람이 되네
오래 써 친숙한 말로 인사를 건네면
금세 초록이 되는 마음들
그가 보는 하늘도 내가 보는 하늘도 다 함께 푸르렀네
바람이 옷자락을 흔들면 모두는 내일을 기약하고
밤에는 별이 뜨리라 말하지 않아도 믿었네
집들이 안녕의 문을 닫는 저녁엔
꽃의 말로 안부를 전하고
분홍신 신고 걸어가 닿을 내일이 있다고
마음으로 속삭였네
불 켜진 집들의 마음을 나는 다 아네
오늘 그들의 소망과 내일 그들의 기원을 안고
사람과 함께 이 길을 걸어가네



가을바람이 소슬히 부는 이 저녁, 보일러를 돌려도 마음이 추운 사람이 있다. 주위에 많은 사람
을 두고도 그들 속에 스며들지 못하거나 마음의 문이 닫혀 있어서 늘 혼자인, 혹은 그들로 부터
외면당하여 홀로 살아야 하는 외로운 인생이 있다. ‘그’가 혹시 ‘나’는 아닌지, 오늘 거울을 바라
보며 거울 속의 나에게 묻는다.
누군가는 말한다. “인생이란 어차피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길 아니냐”고. 그러나 혼자 가 아닌
둘, 둘이 아닌 셋…… 이라면 그 얼마나 즐거운 인생이 될 것인가. 사회가 발전하고 ‘나’만을 중
요시 하는 개인주의가 팽배하면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 타인으로 부터 마음의 문을 닫아 건 건
아닌지 가만히 되돌아 볼 일이다. 오늘 나는 내 마음의 닫힌 빗장을 열고, 고독한 ‘그’에게 다가
가 손을 내밀고 싶다. 그런 넉넉한 저녁이고 싶다. 이기철 선생님의 ‘사람과 함께 이 길을 걸었
네’를 읽기 전에 우리는 너와 나를 가로지르는 경계의 벽을 과감히 무너뜨리고 이 시를 읽어야
한다. 인간과 인간, 사람과 사람과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이 시에서는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발자국이 발자국에 닿으면//어제 낯선 사람도 오늘은 낯익은 사람이 되네//오래 써 친숙한 말
로 인사를 건네면/
어제의 낯선 사람도 오늘 건넨 인사말 한마디로 금세 친구가 되는 마음들.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
이 따뜻해지는 구절이다. /그가 보는 하늘도 내가 보는 하늘도 다 함께 푸르렀네/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어차피 한 하늘 아래서 살아가기 마련,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다 함께 친구가 되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 갈 때 하늘 역시 푸르고 희망적일 것이다. /바람이 옷자락을 흔들면 모
두는 내일을 기약하고//밤에는 별이 뜨리라 말하지 않아도 믿었네/오늘 비록 바람이 불고 가난
하더라도 내일은 별이 뜨고 행복이 올 것이라는 믿음. 작은 것 하나에도 행복을 찾는 그런 착한
사람들…그렇게 사는 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사람냄새 나는 일 아니겠는가? 그렇게 혼자가 아
닌, 더불어 함께 살아 갈 때, 인생은 즐겁고 아름다울 것이다. 이 커다란 우주 아래에서 우리는
혼자 살 수 없다. 이웃과 벗하며 서로를 의지하고 위로하며 살아야 한다. 소박한 꿈을 안고 함께
걸어가야 한다.
사람과 함께 이 길을 가고 싶다. 분홍신 신고 희망을 속삭이며 내일로 걸어가고 싶다. 마음이 따
뜻한 사람들과 함께 내 남은 생의 길을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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