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 300

흙의 사랑법
-이정원(1954~ )
독을 묻었네
마당을 파고 김칫독 묻었네
흙에서 난 배추를
흙으로 만든 독에 담아
다시 흙에 묻었네
흙은 독을 발효시키고
독은 배추를 발효시키고
배추는 나를 발효시킬 것이네
맛이 깊어질수록
독은 점점 제 속을 비워
나를 끌어당길 것이네
겨울이 깊어질수록
나는 독안으로
한없이 꺼져 들어갈 것이네
사랑은 서로 포개지고 겹쳐지는 것이다. 흙과 김칫독과
배추는 둥글게 안은 채 서로에게 파고든다. 발효의 시간
이 이들 사이의 경계를 지운다. 이것을 바라보는 “나”도
발효되어
, 이들의 사랑 속으로 “한없이 꺼져” 들어간다. 긴 겨울
을 함께 가는 땅 속의 사랑. 찬 바람과 얼음과 눈발도 막
지 못하는 흙의 사랑법.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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