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마을/신문에서읽는詩

두 개의 입술/조원

파라은영 2016. 11. 24. 09:53

두 개의 입술
- 조원(1968~ )

 

바람이 나무에게 말하고 싶을 때
나무가 바람에게 말하고 싶을 때
서로의 입술을 포갠다
바람은 푸르고 멍든 잎사귀에 혀를 들이밀고
침 발라 새긴 말들을 핥아준다
때로는 울음도 문장이다
바람의 눈물을 받아 적느라
나무는 가지를 뻗어 하늘 맨 첫 장부터
마침표까지 숨죽여 찍는다
말귀를 알아듣는다는 건
상대의 혀를 움직여주는 것
소통은 바람과 나무가
한결 후련해지는 것!

몸은 대상이 ‘의식’되고 지각되는 통로다. “몸은 응결된

또는 일반화된 실존이며, 실존은 끊임없는 육화이기 때

문이다.”(모리스 메를로-퐁티) 마음은 몸을 통해 실현되

고, 마음의 문장은 몸을 거쳐 완성된다. 바람은 나무의 “

멍든 잎사귀”와 “눈물”을 받아 적기 위해 입술을 내민다.

말귀를 알아듣는다는 것, 소통한다는 것은 몸을 움직여

상대에게 가까이 가는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후련해지

는 것”이다.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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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4.목요일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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