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랭이꽃
- 이승희(1965~ )

착한 사람들은 저렇게 꽃잎마다 살림을 차리고 살지,
호미를 걸어두고, 마당 한켠에 흙 묻은 삽자루 세워두고,
새끼를 꼬듯 여문 자식들 낳아 산에 주고, 들에 주고,
한 하늘을 이루어 간다지.
저이들을 봐, 꽃잎들의 몸을 열고 닫는 싸리문 사이로
샘물 같은 웃음과 길 끝으로 물동이를 이고 가는 모습
보이잖아, 해 지는 저녁, 방마다 알전구 달아놓고, 복(福)자
새겨진 밥그릇을 앞에 둔 가장의 모습, 얼마나 늠름하신지.
패랭이 잎잎마다 다 보인다, 다 보여.
패랭이의 옛말은 ‘펴랑이’이고, 펴랑이란 조선시대에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댓개비를 엮어 사용했던 갓이다. 패랭이꽃의 생김새가 그것과 비슷하여 처
음에 펴랑이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그것이 진화해 패랭이가 되었다고 한다.
이런 맥락 때문에 패랭이꽃은 거친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민중의 상
징으로 자주 사용된다. 이 시는, 가난하지만 착하고 “늠름”하게 살아가는 민
중들의 “복(福)”된 삶을, 더할 수 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재현하고 있다.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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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0.목요일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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