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마른다
신달자(1943~ )
붉은 고추 널어놓은
옆집 한옥 마당에
나도 누워 뒹굴면
온몸 배어나는 설움 마를까
그러려무나
물기 완전 날아가고
빈 젖 같은
마른 씨 안고 있는 화형 직전의 고추같이
바다를 제 몸 안으로 거둬들였음에도
바짝 마른 멸치같이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
붉은 고추가 한옥 마당에서 마르고 있다. 아마도
'앞니만 한 뜰'에서였을 것이다. 물기가 다 날아가
서 없어지고 있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처럼 가을
이 마르고 있다. 가을 햇살에 하나의 풍경도 마르고
있다. 우리 모두도 마른다. 수척해진다. 구르는 낙엽
처럼 종일 뒤척인다. 형체가 왜소해진다. 비워진다.
그리하여 무념에 이르러도 좋을 일이다.
:
- 문태준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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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7.월요일 조선일보 가슴으로 읽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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