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먼산에는 겨울눈이 그대로 쌓여 있고 아이들은 새학기를 맞아 동구밖 큰바위에 모여 한줄로 노래 부르며 등교하던 시절, 한 남자아이가 고집세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여자아이를 발로 다리를 걷어 찼는데, 그여자 아이는 그일로 학교 안가겠다고 울고불고 ....결국 어머니가 학교로 찾아오고 남자아이는 학교 운동장에서 '업드려뻐쳐'벌을 받게 되었다 .
방학이되면 아이들은 소풀을 뜯고 오후에는 소를 몰고 산으로 간다 소들은 저희들끼리 모여서 풀을먹고, 아이들은 송진을따고 찔래를 꺽고 약초도 캐고 곤충도 잡고 들고간 책도 읽고 배가고프면 돌을 불에 달구어 감자무지를 하고 떡개구리를 잡아서 구어 먹기도 하며 나무와 풀속에서 하루해가 서산으로 질때쯤이면 소를 몰고 함께 마을로 내려온다
열 다섯살 여름에 남동생들을 따라 소몰이를 함께 따라 갔다. 낮은 산에서 들꽃을 꺽기도 하고, 동화책을 읽고 있을때 갑작이 맑은 하늘에 천둥번개가 번쩍이며 소나기가 쏟아지자 아이들은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졌다. 혼자 당황하고 있는데 누군가 내팔을 잡고 숲으로 만든 아이들만의 아지트로 끌고 갔다. 그곳은 비가 내리지 않았고 아늑하고 좋은곳이었다. 비가 그칠동안 처음으로 그 남자아이를 가까이서 보게 되었다. 햇살이 맑게 비치고 시원한 바람이 볼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남자는 어디선가 들꽃을 한아름 꺽어서 쑥스러운 듯 한손으로 내게 내밀었다.
다리가 불편한 나는 늘 교실 창문으로 운동장을 바라보며 그남자를 찿았다. 친구들과 공차기를 하고 때로는 교무실앞에서 '업드려'서 벌을 받기도 했다. 나는 수업이 끝나면 학교 도서관에서 캄캄 하도록 책을 읽다가 집으로 간다. 마을 하나를 지나고 들길을 들어서면 어디선가 그 남자가 내뒤를 따라 오고 있다. 처음에는 무섭기도 하고 반갑기도 해서 "너 어디있다가 지금오니?" 그는 웃으면서 버들피리 한줌을 내게 내 밀었다 '나 피리 불줄 몰라!' 그는 구멍을 손가락으로 몇개 가리고 버들피리 부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아이들이 없을때는 책가방을 들어주고 개울이 나오면 나를 업고 건너주었다.
그남자가 사는집은 우리집 아래로 두번째 집이고 우리집 앞에는 공동 우물이 있다. 그는 내 동창이고 어릴때 부터 함께 자란 친구이다. 마을에는 친구들 모두 은씨 성 이었는데 그 남자는 박씨 집안이다. 친구들이 그남자의 집에서 가끔 모여서 놀았다. 내기 화투를 치고 지는 편이 과자와 술을 사야 했는데 술판을 벌리고 누군가 내게 술을 부어주면, 그는 자연스럽게 내앞에 놓인 술잔을 들고 마셔 주었다.
수학여행을 다녀와서 그는 가는곳마다 사진을 찍어와서 가지 못한 나를 위하여 설명을 해주고 마음에 드는 사진 한장을 가지라고 했다. 나는 배경이 좋은 사진을 골라 가졌다. 그런데 그는 내게서 사진을 뺏았더니 찢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의 독사진을 고르지 않고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을 골랐던것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고향 우체국에 근무하게 되고 그는 직업군인이 되기위하여 영천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토요일 막차 버스에서 그 남자가 내렸다. 우리는 약속은 안했지만 그날 저녁이되면 우물가에서 만났다. 그는 밤이 늦도록 군대에서 훈련받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 주었다
눈이 내리고 성탄절이 며칠 안남았는데 그 남자가 첫번째 휴가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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