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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래를 기다리며/안도현외1편

파라은영 2006. 7. 4. 11:59

고래를 기다리며
시: 안도현
낭송자: 은희영


고래를 기다리며
나 장생포 바다에 있었지요
누군가 고래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했지요
설혹 돌아온다고 해도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요,
나는 서러워져서 방파제 끝에 앉아
바다만 바라보았지요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치는 게 삶이라고
알면서도 기다렸지요
고래를 기다리는 동안
해변의 젖꼭지를 빠는 파도를 보았지요
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
어깨를 들썩이는 그 바다가 바로
한 마리 고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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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비빈다는 것
시인: 이정록
낭송자 :은희영


첫나들이 나온
아기 참새들이 종알대고 있어요
저 혼자 날아가지도
흩어지지도 말라고
어미가 다짐받고 있네요

한참 만에 어미 참새가
벌레 한 마릴 물고 왔어요
막막한 세상으로 아기들이
다 날아가 버렸는데 말이에요
다섯 마리 가운데 무녀리 한 마리
녀석의 마지막 끼니가
앙다물려 있네요

어미의 벙어리울음을
벌레의 솜털이 다 받아내고 있어요
하늘을 날아온 저 벌레의 집에도
남은 식구들의 목메임이 있겠지요
일파만파, 세상을 조여 오는 그 몸부림이
어미 새의 젖은 눈길과 만나면
회오리가 일겠지요

삼킬 수도
내려놓을 수도 없는
슬픈 실타래, 허공에 가득할 테니
눈을 비비는 거겠지요
그댈 만나러 갈 때마다
참새처럼 작아지는 거겠지요
눈꺼풀이 떨리는 거겠지요

출처 : 파라의 신(神)과걷는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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