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마을/신문에서읽는詩

장미의 속/릴케

파라은영 2016. 3. 14.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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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가 이 속에 대한

밖인가요? 어떤 아픔 위에

그 아마의 천을 놓습니까?

어떤 하늘이

이 열린 장미의

이 무사무념(無思無念)의 장미꽃 호수 속에서

비추이고 있습니까. 보십시오.

장미꽃들은

떨리는 손으로 결코 헝클어트릴 수 없다는 듯

풀어져 흐트러져 있군요

장미꽃들은 제 몸들을 제가

가누지 못합니다. 너무 넘치거나

그 속의 공간에서 흘러나와

갈수록 쨍쨍한 대낮 속으로 들어가

마침내 온 여름을 한 칸의 방으로 만든답니다.

꿈속의 방입니다.



릴케는 다른 글에서 아네모네 꽃을 보고 “낮에 얼마나 활짝 피었는지 꽃은 밤이 되어도 스스로를 닫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이 시에서 장미는 너무 열려서 속과 밖을 구분하기 힘들다. 그것은 완전히 열어서 “무사무념”의 상태에 이르렀으며, 너무 열어서 더 이상 흐트러질 수가 없다. 너무 넘쳐서 “온 여름을” “꿈속의 방”으로 만들고, 세상의 “아픔”을 꽃잎(“아마의 천”)으로 덮는다. 역설적이게도 릴케는 장미가시에 찔려 세상을 떠났다.

<오민석 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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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3.12.토요일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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