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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천국같은 나라는 없다/동아광장/주경철

파라은영 2015. 12. 11. 11:43

“한국은 지옥” 푸념하는 청년들  
근대초 유럽 이끈 주인공들은 기성세대 아닌 피 끓는 20대
청년들이 당당히 어깨 펴고 새 역사 만들어가는 활기찬 새해가 됐으면…

                                  - 주경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

 

한 여행자가 지옥을 방문해 보니 그곳에 유대인들이 가득 있었다.

이들은 모두 엄청나게 긴 포크를 가지고 있어서 눈앞에 음식이

있어도 자기 입으로 음식을 가져올 수 없었다. 다들 쫄쫄 굶고

 있는 모습을 보고 여행자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두 사람씩

짝을 지어 각자 자기 앞에 있는 사람에게 음식을 먹여주면 되지

 않겠소?” 그러자 여럿이 대답했다. “당최 가능하지 않은 이야기요.

 차라리 굶어 죽는 게 낫지, 나보고 다른 유대인을 먹이라고?”

혹시 오해하실까 봐 미리 밝히자면, 이건 다른 사람들이 유대인

을 욕하는 게 아니라 유대인들이 스스로 웃자고 하는 이야기란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한 유대인 여행자가 안식일에 어느 도시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날은 돈지갑을 몸에 지니는 게 엄격히 금지

되어 있어 랍비를 찾아가 다음 날 저녁까지 지갑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다른 두 사람이 증인도 섰다. 다음 날 저녁, 랍비를

찾아가 전날 맡긴 지갑을 돌려 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랍비는

“지갑이라니?” 하며 딴소리를 했다. “어제 지갑을 맡기지 않았

습니까? 증인도 두 사람 있었고요.” “그러면 그 증인들 불러

보세.” 그런데 불려온 그 두 사람도 딴소리를 했다. 지갑 맡기

는 것을 본 적이 없고 자기네는 누구 앞에 증인을 선 적도 없다

고 딱 잡아떼는 것이다. 별수 없이 여행자는 돈을 다 떼이고 떠

날 판이었다. 랍비의 집을 나서려는데, 그가 여행자를 불러 세

우면서 “이거 받게” 하고 지갑을 돌려주는 게 아닌가. “랍비님,

조금 전에는 왜 지갑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하신 건가요?” “이곳

에서 내가 얼마나 사악한 인간들과 일하는지 보여주려고 그런

거라네. 여긴 거짓말쟁이, 무뢰배, 사기꾼, 도둑놈 천지야!” 

올 한 해를 돌아볼 때 가장 크게 가슴 아픈 것 중 하나가 우리의

 젊은이들이 이 나라를 ‘헬조선’으로 비하한 일이다. 자기 사는

곳을 지옥으로 묘사하고 가능하면 빨리 떠나고 싶다니 실로

어이없는 망발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청년실업 문제가 심하

고 사는 게 힘들다는 이야기겠지만, 그렇다고 이 나라를 지옥

이라고 부르는 건 분명 과장이다. 단언컨대 세계 어디를 가도

 다 문제투성이이고, 천국 같은 나라는 한 곳도 없다.

지난 시대에는 젊은이들이 역사를 만들어갔다. 근대 초 유럽사

를 보면 스페인의 카를로스 1세는 17세, 잉글랜드의 헨리 8세는

 18세,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는 20세에 왕이 되었고, 오스만제

국의 술레이만 대제가 26세로 그나마 제일 늦게 권력을 잡았다

. 이들이 모두 최고 권력을 잡은 1520년을 기준으로 보면 다들

아직 20대의 젊은 나이에 유럽 대륙의 역사를 만들어갔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세계를 정복하겠다며 원정을 떠난 것도

스무 살 때의 일이다. 

우리 젊은이들이 ‘여긴 불지옥이야’ 하며 푸념을 늘어놓고 앉아

 있는 대신 세계를 향해 웅비하도록 사기를 팍팍 북돋워줄 방안

은 없을까? 들리는 거라곤 일자리를 찾는 저소득 취업준비생

에게 최대 6개월까지 매달 50만 원을 지원하는 청년수당 아이

디어 정도지만, 이 역시 정석은 아닌 것 같다. 가련한 사람들

에게 소액을 쥐여주며 시혜를 베푸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영

편치 않다. 이왕 도와줄 생각이면 조금 더 진취적인 해결 방안

을 찾아볼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노라니 작금의 정치권을 향해 욕을 한마디 안

할 수가 없다.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청년일자리 창출 방안은

다른 어느 곳보다 국회가 나서서 논의하고 발의해야 하는 게

아닐까? 여야 할 것 없이 모두 청년실업 문제에 관심이나 두

고 있는 건지 통 알 수가 없다. 혹시 그곳도 ‘거짓말쟁이,

무뢰배, 사기꾼, 도둑놈 천지’라서 그런가?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것도 우리 자신이고 천국으로

만드는 것도 우리 자신일진대, 아무쪼록 새해에는 젊은이

들이 어깨 펴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활기찬 병신년

(丙申年)이 되면 좋겠다. ‘세계를 정상 온도로 유지하는 것

은 젊음의 열기 덕분이다. 젊음이 식으면 나머지 세계는

 이를 두드리며 떤다.’(조르주 베르나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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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1.금.오피니언,주경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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