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행자가 지옥을 방문해 보니 그곳에 유대인들이 가득 있었다.
이들은 모두 엄청나게 긴 포크를 가지고 있어서 눈앞에 음식이
있어도 자기 입으로 음식을 가져올 수 없었다. 다들 쫄쫄 굶고
있는 모습을 보고 여행자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두 사람씩
짝을 지어 각자 자기 앞에 있는 사람에게 음식을 먹여주면 되지
않겠소?” 그러자 여럿이 대답했다. “당최 가능하지 않은 이야기요.
차라리 굶어 죽는 게 낫지, 나보고 다른 유대인을 먹이라고?”
혹시 오해하실까 봐 미리 밝히자면, 이건 다른 사람들이 유대인
을 욕하는 게 아니라 유대인들이 스스로 웃자고 하는 이야기란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한 유대인 여행자가 안식일에 어느 도시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날은 돈지갑을 몸에 지니는 게 엄격히 금지
되어 있어 랍비를 찾아가 다음 날 저녁까지 지갑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다른 두 사람이 증인도 섰다. 다음 날 저녁, 랍비를
찾아가 전날 맡긴 지갑을 돌려 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랍비는
“지갑이라니?” 하며 딴소리를 했다. “어제 지갑을 맡기지 않았
습니까? 증인도 두 사람 있었고요.” “그러면 그 증인들 불러
보세.” 그런데 불려온 그 두 사람도 딴소리를 했다. 지갑 맡기
는 것을 본 적이 없고 자기네는 누구 앞에 증인을 선 적도 없다
고 딱 잡아떼는 것이다. 별수 없이 여행자는 돈을 다 떼이고 떠
날 판이었다. 랍비의 집을 나서려는데, 그가 여행자를 불러 세
우면서 “이거 받게” 하고 지갑을 돌려주는 게 아닌가. “랍비님,
조금 전에는 왜 지갑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하신 건가요?” “이곳
에서 내가 얼마나 사악한 인간들과 일하는지 보여주려고 그런
거라네. 여긴 거짓말쟁이, 무뢰배, 사기꾼, 도둑놈 천지야!”
올 한 해를 돌아볼 때 가장 크게 가슴 아픈 것 중 하나가 우리의
젊은이들이 이 나라를 ‘헬조선’으로 비하한 일이다. 자기 사는
곳을 지옥으로 묘사하고 가능하면 빨리 떠나고 싶다니 실로
어이없는 망발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청년실업 문제가 심하
고 사는 게 힘들다는 이야기겠지만, 그렇다고 이 나라를 지옥
이라고 부르는 건 분명 과장이다. 단언컨대 세계 어디를 가도
다 문제투성이이고, 천국 같은 나라는 한 곳도 없다.
지난 시대에는 젊은이들이 역사를 만들어갔다. 근대 초 유럽사
를 보면 스페인의 카를로스 1세는 17세, 잉글랜드의 헨리 8세는
18세,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는 20세에 왕이 되었고, 오스만제
국의 술레이만 대제가 26세로 그나마 제일 늦게 권력을 잡았다
. 이들이 모두 최고 권력을 잡은 1520년을 기준으로 보면 다들
아직 20대의 젊은 나이에 유럽 대륙의 역사를 만들어갔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세계를 정복하겠다며 원정을 떠난 것도
스무 살 때의 일이다.
있는 대신 세계를 향해 웅비하도록 사기를 팍팍 북돋워줄 방안
은 없을까? 들리는 거라곤 일자리를 찾는 저소득 취업준비생
에게 최대 6개월까지 매달 50만 원을 지원하는 청년수당 아이
디어 정도지만, 이 역시 정석은 아닌 것 같다. 가련한 사람들
에게 소액을 쥐여주며 시혜를 베푸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영
편치 않다. 이왕 도와줄 생각이면 조금 더 진취적인 해결 방안
을 찾아볼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노라니 작금의 정치권을 향해 욕을 한마디 안
할 수가 없다.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청년일자리 창출 방안은
다른 어느 곳보다 국회가 나서서 논의하고 발의해야 하는 게
아닐까? 여야 할 것 없이 모두 청년실업 문제에 관심이나 두
고 있는 건지 통 알 수가 없다. 혹시 그곳도 ‘거짓말쟁이,
무뢰배, 사기꾼, 도둑놈 천지’라서 그런가?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것도 우리 자신이고 천국으로
만드는 것도 우리 자신일진대, 아무쪼록 새해에는 젊은이
들이 어깨 펴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활기찬 병신년
(丙申年)이 되면 좋겠다. ‘세계를 정상 온도로 유지하는 것
은 젊음의 열기 덕분이다. 젊음이 식으면 나머지 세계는
이를 두드리며 떤다.’(조르주 베르나노스)
=====================================================
2015.12.11.금.오피니언,주경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