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 없는 잠
시인 : 최문자
어젯밤 꽃나무 가지에 한숨 잤네
외로울 필요가 있었네
우추에 가득찬 비를 맞으며
꽃잎 옆에서 자고 깨보니
흰 손수건이 젖어 있었네
지상에서 없어진 한 꽃이 되어 있었네
한 장의 나뭇잎을 서로 찢으며
지상의 입들은 여전히 사우고 있네
저물녁 마른 껍질 같아서 들을 수 없는 말
나무 위로 올라오지 못한 꽃들은
짐승 냄새를 풍겼네
내가 보았던 모든 것과 닿지 않는 침대
세상에 닿지 않는 곷가지가 좋았네
하늘을 데려다가 허공의 아랫도리를 덮었네
어젯밤 꽃나무에서 꽃가지를 베고 잤네
세상과 닿지 않을 필요가 있었네
지상에 없는 꽃잎으로 잤네
============================================
2015.10.2. 금. 동아일보의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시(詩)가 있는 마을 > 신문에서읽는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어느 소나무의 말씀/정호승 (0) | 2015.10.12 |
|---|---|
| 소금창고/이문재 (0) | 2015.10.05 |
| 무지개를 사랑한 걸/허영자 (0) | 2015.09.25 |
| [스크랩] [나를 흔든 시 한 줄] 육유(陸游·1125~1210)의 시 중에서 - 신각수 전 주일대사 (0) | 2015.09.23 |
| 바람의 말/마종기 (0) | 2015.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