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안동 노회 소속 당시 송천교회 시무 전도사님 현재 미안마 가나안 농군학교 설립 사역 혼돈의 때, 내 인생에서 큰 감화를 끼친 선배 한 사람 사람마다 그 일생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는 젊었을 때(지금도 젊지만), 그러니까 더 젊었을 때 마하트마 간디와 마르틴 루터 킹의 사상과 생에 깊이 빠졌었다. 그러나 내가 직접 만난 사람으로서 나에게 큰 감화를 끼친 사람이라면 대학 3년 선배인 상옥이 성님을 먼저 꼽는다. 김상옥. 그는 서울농대 학생으로서 서울대기독학생회 활동을 통해 만났다. 그는 상당히 작은 키(나보다도 더 작았다), 아무렇게나 생긴 얼굴,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 게다가 박박 깎은 머리에 늘 검정고무신을 신고 다녔으니 남이 보면 영락없는 시골 머슴이었다. 그러나 상옥이 형을 만날 때마다 나는 그의 신념과 삶의 모습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상옥이 형은 불의를 보면 절대 참지 못한다. 시험 볼 때면 상옥이 형이 있는 자리에서는 아무도 부정행위를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부정행위가 상옥이 형의 눈에 뜨이기라도 하면 그 자리에서 일어나 일갈했다고 한다. "장차 이 나라, 이 민족을 이끌어야 할 대학생으로 어찌 이런 부끄러운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러고도 우리가 기성세대를 비난할 수 있는가"라고. 뿐만 아니라 시험 감독 중인 교수에게도 항의했다고 한다. "교수님, 우리 학생들이 잘 못 행동한다면 지적하고 엄히 꾸짖어주셔야 하지 않나요? 시험감독으로 오셨으면 그 임무를 제대로 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그러니 감히 누가 상옥이 형 앞에서 부정행위를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매사에 이렇게 빡빡한 형은 아니었다. 누구보다도 정이 많고 사랑이 깊었다. 학과에서 일등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에 학기마다 장학금을 받았다. 상옥이 형도 생활이 궁핍했지만 자기보다 어려운 친우를 찾아가 장학금을 나누곤 했다. 당시 박정권의 군사독재에 대해서 앞장 서 투쟁하던 상옥 형은 졸업을 눈앞에 두고 제적, 군에 강제 징집되고 말았다. 훈련을 마치고 대전통신학교 교육을 받던 시절에 형은 일개 육군 이등병의 신분으로 대전통신학교를 뒤집어놓은 사람이다. 통신학교에서 장교들이 부당하게 군수품을 빼돌리는 것을 알게 된 상옥이 형은 통신학교 교장(육군 준장)을 찾아갔단다. 이등병 신분으로 스타를 면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부속실을 통과해야만 할뿐 아니라 이런 일 때문에 장군을 면담하겠다고 하면 만나줄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당한 태도로 찾아온 이등병을 부관장교는 아마 장군의 조카쯤으로 되는 줄 알았던지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사이 상옥 형은 장군 집무실 안으로 불쑥 들어서고 만 것이다. 통신학교 교장에게 통신학교의 잘못된 관행과 해이된 기강을 눈물로 호소했단다. 이등병의 말에 감동받은 교장장군은 즉각 관련자를 문책, 대대적 숙군 작업이 이루어졌다. 통신교육을 마친 상옥이 형은 광주 무등산 꼭대기에 위치한 통신부대에 배치되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70년대 초, 무등산 통신부대는 하릴 없이 먹고 노는 만고 땡인 독립부대였나 보다. 그런 가운데 군수용 유류가 다량으로 빼돌려지고 있었다. 이것을 상옥이 형이 가만 둘 리가 없었다. 하사관과 장교들에게 '국민의 혈세로 구입된 피와 같은 기름으로 어찌 사리사욕을 채울 수 있단 말인가'고 항의 했단다. 처음에는 상옥이 형을 우습게보고 상관들이 위협했단다. "이 자슥이, 뱃대지가 불러서 헛소리를 하는 모양인데 다음부터 또 헛소리 하믄 x뺑이 치는 전방으로 보내뿐다." 그럴 때면 "저는 편하자고 군에 온 것 아닙니다. 다른 사병들 고생하는데 이렇게 지내는 것 편치 않습니다. 어디로 보내든 상관 않습니다"고 맞서는 형에게 누군들 배겨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 이 골치 아픈 녀석을 눈 밖으로 내 놓아야겠다 싶었던지 광주전신전화국에 파견병으로 쫒아버렸다는 것이다. 전화국 파견병은 그야말로 만고 땡(?)인 자리였다. 점호도, 검열도, 아무 것도 없었으니. 전화가 귀하던 그 시절에도 상옥이 형은 늘 장거리 전화로 우리에게 안부를 묻고 서로의 소식을 전하곤 했다. 군 제대 뒤, 제적이 취소되어 다행히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던 형은 경북 안동농고 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지금도 그렇듯이 농업고등학교는 가난하고 공부에 관심 없는 학생들이 많았다. 어찌 보면 낙오되고 소외된 학생들이었던 것이다. 상옥 형은 이들을 보듬어 안으면서 신앙을 통하여 꿈을 불어넣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학생들은 김상옥 선생님을 통해 새로운 의욕으로 일어설 수 있었다. 한 편 주말이면 상옥 형은 자전거를 타고 안동시의 교외 농촌 마을을 찾아다니며 농촌청년들을 대상으로 청년운동을 일으켰다. 농촌마을을 찾아갈 때마다 늘 지나치던 과수원이 있었다고 한다. 그 과수원을 지나칠 때마다 '이 과수원이 내게 맡겨진다면 멋있는 농촌부흥 사업을 일으킬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과수원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도 중에 과수원 주인에게 과감하게 과수원을 요구하라는 하나님의 감동이 있었다고 한다. 용기를 얻은 상옥이 형이 과수원 주인을 찾아가 이 과수원을 보람된 일을 위해 내놓지 않겠는가고 말하자 놀랍게도 주인이 선뜻 허락을 했다. 이 주인은 안동의 큰 부자 장로님이었는데 이 일이 있기 얼마 전, 부산에 출장 중 한 여관에서 묵게 되었다. 여관방에 놓여있던 성경책이 장로님의 눈에 뜨여 페이지를 넘기던 중, 예수님을 위해 새끼 당나귀를 선뜻 내어준 나귀 주인 이야기를 읽게 되었는데 이상하게 그 내용이 자기 머리를 떠나지 않더라는 것이다. '나는 많은 재산이 있는데 그동안 예수님을 위해 한 것이 없었구나'는 자책이 들던 차에 상옥이 형이 농촌부흥을 위해 청년들의 훈련센터로 그 과수원을 사용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 과수원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농촌훈련센터가 되었다. 많은 농촌청년들이 이 과수원에서 새로운 꿈을 가꾸어 갔다. 이 과수원에서 생산된 과일은 품질이 단연 으뜸이었다고 한다. 이 소문이 모교인 서울농대에까지 퍼져, 이 과수원은 서울농대 실습농장으로 지정, 서울농대 후배들까지 이 농장에서 훈련을 받게 되었다. 그 뒤 신학대학에 진학한 상옥이 형은 어렸을 때부터 존경해 마지않던 슈바이처 박사의 뒤를 잇겠다는 일념으로 80년대 초, 슈바이처 박사가 헌신했던 아프리카 가봉의 리브레벨에 선교사로 들어가 선교와 아프리카 농촌운동에 헌신했다. 16년 동안의 헌신을 통해 여러 군데의 모범농장과, 신학교와 초중등학교가 세워지고 가봉의 청년들이 믿음 안에서 세워졌다. 기틀이 잡힌 것을 본 상옥이 형은 후계자들에게 모든 것을 넘겨준 뒤 아무 미련 없이 2000년 초에 귀국했다. 이슬람 선교를 개척할 생각을 하고 준비하던 상옥 형은 어느 날, 존경하던 가나안농군학교의 창시자 고 김용기 장로의 산소를 찾아가 성묘 뒤 그 앞에서 기도하던 중, 현 가나안농군학교 교장인 김범일 장로(김용기장로의 아들)와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마침 김 장로는 미얀마에 가나안농군학교를 세울 계획을 구상하면서 이일을 맡길 만한 적임자를 찾고 있던 차였다. 상옥이 형과 대화 끝에 '바로 이 사람이다'는 확신이 든 김 장로는 형에게 미얀마 농군학교를 맡아줄 것을 간곡하게 부탁했다. 상옥 형은 현재 미얀마 가나안농군학교 교장으로 군사독재 하에서 가난과 무지에 시달리는 미얀마의 청년들과 농민들에게 새로운 소망을 심어주기 위해 땀 흘리고 있다. 상옥 형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년이 넘지만 나는 그 형을 잊을 수가 없다. 젊었을 때 좋은 선배나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큰 복이다. 그러니 나는 얼마나 복 받은 사람인가. 나도 상옥이 형과 같은 삶을 살고 싶었는데 어디 그것이 아무나 하는 일이겠는가. 이 시대에, 우리나라에 상옥이 형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우리 민족에게서 소망을 본다. 위선과 거짓, 배신과 음모가 팽배하여 온통 혼란한 요즘 같은 세상에서 상옥이 형이 더욱 그리워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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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켄트소식- cafe.daum.net/gh00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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