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마을/좋은 詩 감상

봄에 쓰는 편지 / 안희선

파라은영 2009. 2. 12. 11:43

봄에 쓰는 편지 / 안희선


세월에 채색되는 파아란 물감은
빛나는 모든 것 위에로 번지어,
놀란 듯한 창(窓)문 가에는
어느덧 봄이 걸렸습니다

부드러운 햇빛의 반사(反射)가
매끄러운 나무결을 따라 흐르고,
기다리는 땅 위에선 야릇한 머릿털이
풀잎처럼 솟습니다

지난 겨울,
내 가슴 속 풍성하게 무르익은
새로운 침묵은
아마도 스스로의 사랑에 대한
변명인 듯 합니다

이제, 당신을
조금 다른 각도(角度)로 그려 보면서
세상이 봄인 동안에
졸렬했던 나의 무언(無言)을
단순하고도 뜨거웁게 지우려 합니다

노오란 인동(忍冬)이 개나리 꽃을 피우 듯,
하얗게 솟아난 고독을 한 송이 꽃으로 피우렵니다

그러다, 바람이 몹시 부는 날
눈부시게 떨어져
소박한 영혼들이 손잡고 거닐었던
오솔길에
고요한 입맞춤을 하려 합니다

나 이제,
모든 소리 잠재웠던
설명하기 어려운 겨울날의 슬픈 이유를
굽이치는 봄바람에 실어 그대에게 보내오니,

하늘 높이 떠가는
하얀 구름 읽으시거든
부디,
소식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