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 전화를 걸다
시인 : 손택수
낭송자 : 은희영
지리산에 전화를 건다
아마도 진달래 수달래
꽃물결 짜하게 번져있던
칠선계곡 어디쯤,
아님 물안개를 속곳처럼 아슬하게 걸쳐서
보얀 살결이 드러날까 말까
넋을 잃기 좋았던 선녀탕 부근?
지리산에서 잃어버린 휴대폰에
전화를 걸어본다 나는
누군가와 늘 통화중이었지만
언제나 불통이었지
불통의 대가로 비싼 통화료만 냈어
그런데 그때 그 산속에서까지
통하지 않으면 안될 소중한 누가
과연 내게 있기는 있었단 말인가
무인도는 가지 못하고
통화권이라도 이탈할 수 있는 자신을
한숨처럼 탁 놓여날 수 있는 자신을
확인이라도 하고 싶었단 말인가
지나가던 산토끼나 호기심 많은 곰이
사용법을 몰라 애를 먹고 있을 지도 모를,
성질 급한 멧돼지의 뱃속에 들어가서
가끔씩 들어오는 문자 메시지 소리로
꾸르륵거리고 있을 지도 모를
휴대폰에 음성 메시지까지 남겨본다
아마도 산은 휴대폰 하나 때문에
통화권을 이탈해버린 자신이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탈한 적도, 통화를 거부한 적도 없이
우연하게 떠맡은 애물단지의 처리를 놓고
지끈지끈 골치가 아플 것이다
내가 통화권을 이탈한 뒤에 지리산을 만났다면,
지리산은 나를 만나고서야 비로소
통화권을 이탈했다 할까, 그럴까
산은 받지 않는다 심기가 불편한지
내내 묵묵부답이다
'시(詩)가 있는 마을 > 좋은 詩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 위에 /김소월 (0) | 2009.04.30 |
---|---|
연인이 아니라 친구라도 좋다 / 이해인 (0) | 2009.04.30 |
섬진강 1 / 김용택 (0) | 2009.04.21 |
하얀 목련, 그토록 그리웠던 해후 (邂逅) / (宵火)고은영 (0) | 2009.03.21 |
워즈워드의 시 모음 번역 (0) | 2009.0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