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마을/좋은 詩 감상

윤선아의 「비 오는 날 기차 안에서」

파라은영 2007. 8. 9. 17:07
윤선아의 「비 오는 날 기차 안에서」


우리는 낯선 사람들 속에서 물먹은 표주박이다
그렇게 오랜 세월 말려져
부엌 벽에 걸려 웬만큼 검댕도 묻은
물먹어 소리 없이 무너져 내릴 표정을 하고
유리창에 부딪쳐 칼날이 되는 비와 기차의 속도
서울 대전을 오가며 우리가 본 것은 무엇인지
내리는 비처럼 우리도 마냥 흘러
이곳에 모여 있는가
습기 머금은 살갗 안에는 얼마나
푸석푸석한 삶들을 담고 있는지
아이가 떨어뜨린 사탕을 보며
단물이 고이는 입 안
아이의 혀에 묻어 있을 그
달착지근함으로 비가 내리면
창밖의 나무와 나무
선로와 선로의 거리에도
단 비가 내리치겠지
소시지를 까먹는 옆자리 학생
한 선의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듯
서로의 삶으로 주억거릴 수 있는 것을
역 출구 빠져 나오며
내려놓을 것은 기차표뿐
서로는 표주박처럼 자신에 젖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