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향
이십일 세기에 들어 고향은 스스로 나를 떠났다. 나숭개나 씀바구 그 흐드러진 봄나물은 그대로 두고 제 살아온 세월만 데리고 떠났다. 더 이상 영혼이 짓밟히는 것을 견딜 수 없었겠지. 그렇게 고향은 가고 나는 홀로 남아 스스로 고향이 되었다. 마흔여섯 살 먹은 어린 고향이 되어 나는 나대로 갈 곳이 없었다. 바람찬 날의 팽나무 이파리로 흩어질 수도 봇도랑 참붕어로 누군가에게 잡혀 올려질 수도 동산에 올라 친구를 부를 수도 없었다. 하지만 내가 빈 껍데기의 고향이라도 그리움의 퇴적층이라도 되어 남아 있는 한 고향은 돌아올 것을 믿는다. 가뭇없이 사라진 마음을 헤집고 참을 수 없이 쏟아지는 눈발이 되어 차곡차곡 지난 세월을 돌려놓을 것이다.
-박두규(1956∼)시. 계간『시와 사람』2002년 봄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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