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은영 2017. 8. 11. 14:54
사진관 의자
-유홍준(1962~ )

참 이상한 곳에 놓인 의자군,
아무도 이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기지 않고
아무도 이 의자에 앉아 졸지 않고
아무도 이 의자에 앉아 창밖
지나가는 차 바라보지 않네
참 적막한 곳에 놓인 의자
외톨박이 의자군, 오늘도
혼자뿐인 의자 단 한 번도
엉덩이가 따뜻해져 본 적이 없는 의자
누구랑 마주 앉아서
얘기를 하나, 얘기를 듣나
오늘도 검은 커튼 뒤에 앉아
혼잣말만 하는 의자
독백의 의자 그래도 조용하고
단정한 의자군, 진짜보다 더
예쁜 가짜 꽃바구니 두어 개
제 곁에 갖다놓고 누구는
이 의자 한가운데 앉아
돌사진, 독사진을 찍고
누구는 졸업사진, 영정사진을 찍고
(…)


사진관 의자. ‘앉는다’는 기능만 가진 생략된 의자. 의자는 보통 마주 앉는

 상대방을 상정하게 되지만 사진관 의자는 독백의 의자요 외톨박이 의자.

흘러가는 시간의 바람을 홀로 응시하는 의자. 영원 속에 내 흔적을 박아

주는 고마운 의자. 고마운 존재는 늘 그렇게 적막 속에 홀로 남겨져 있는 법.

<김승희·시인·서강대 국문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사진관 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