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은영 2017. 1. 23. 17:47

산문시 1
- 신동엽(1930~69)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 리본 단 딸아이

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

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 묻은 책 하이덱

거 럿셀 헤밍웨이 장자. 휴가 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 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오 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

화스러이 자기 사무실 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 애당초

어느 쪽 패거리에도 총 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 병을 싣고 삼십 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감상적인 꿈일까. 1968년 11월 작이니 50년 저편의 시다. 아름답고 한편 슬퍼져 다른 말을

덧붙일 수 없다. 어질고 슬기로운 리더에 대한 희구는 동서고금을 넘는다. 그러므로 생각할

수록 대권은 낡은 말이다. 대임(大任)이 맞다. 가장 낮게 노심초사하고야 감당될, 할 수만 있

다면 피하고 싶은 큰 짐. 그런데 나는 부끄럽진 않은가. 모든 국민은 제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는 아픈 말이.
<김사인·시인·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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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3.월요일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