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은영 2015. 9. 7. 13:36

인기척

   천수호(1964~ )

 

갓 결혼한 신부가 처음 여보, 라고 부르는

것 처럼

길이 없어 보이는 곳에서 불쑥 봉분 하나

나타난다

인기척이다

여보, 라는 봉긋한 입술로

첫 발음의 은밀함으로

일가를 이루자고 불러 세우는 저건 분명

사람의 기척이다

기어코 여기 와 누운 몸이 있었기에

뒤척임도 없이 저렇게 인기척을 내는 것

 

새 신부적 여보, 라는 첫말의 엠보싱으로

저기 말랑히 누웠다 일어나는 기척을

누가 올 것도 누가 갈 것도

먼저 간 것도 나중 간 거도 염두에 없이

지나가는 기척을 가만히 불러 세우는 봉분의 인기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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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9.7.월 중앙일보 장석주시인의 시가있는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