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은영
2015. 8. 17. 13:40
맨발
문태준(1970~ )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재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
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 하는 궁리
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
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
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
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
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
동아일보 이영광의 시의 눈 2015.8.1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