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은영 2015. 7. 20. 10:48

기침의 현상학

  시인 : 권혁웅(1967~ )

 

할머니가 흉곽에서 오래된 기침 하나를 꺼낸다

물먹은 성냥처럼 까무룩 꺼지는 파찰음

이다

질 낮은 담배와의 물물교환이다

이 기침의 연대는 석탄기다

부엌 한족에 쌓아두었다가 원천징수하듯

차곡차곡 꺼내어 쓴 그을음이다

할머니는 가만가만 아랫목으로 구들장으로

아궁이로 내려간다 구공탄 구멍마다

폐(廢), 적(寂), 요(寥) 같은 단어가 숨어있다

벌겋게 달아올라 있다 가끔

일산화탄소들이 비눗방울처럼 올라온다

할머니, 기침하나를 펴서 아랫목에 널어둔다

장판은 담뱃재와 열기로 까맣고 동그랗다

기침을 거낸건데 폐 전체가 딸려 나온 거다

양쪽 폐를 칠하느라 염료를 다 써서

할머니 머리를 온통 하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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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7.20. 월 중앙일보 시가있는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