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은영
2015. 5. 27. 15:43
아아,
시인 : 박소란(1981 ~ )
담장 저편 희부연 밥 냄새가 솟구치는 저녁
아아,
몸의 어느 동굴에서 기어나오는 한줄기 신음
과일가게에서 사과 몇 알을 집어들고 얼마예요 묻
다는 게 그만
아파요 중얼거리는 나는 엄살이 심하군요
단골 치과에선 종종 야단을 맞고 천진을 가장한 표
정으로
송곳니는 자구만 뾰족해진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아직
아침이면 무심코 출근을 하고 한 달에 한두 번 누
군가를 찾아 밤을 보내고
그러면서도 수시로 아아,
입을 틀어막는 일이란
남몰래 동굴 속 한 마리 이름 모를 짐승을 기르는
일이란
조금 외로운 곳일지도 모른다고
언젠가 동물도감 흐릿한 주석에 밑줄을 긋던 기억
아니오 말한다는 게 또다시 아파요
나는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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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2.27수 동아일보 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