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아우카 계획
*아우카 계획
아우카 계획은 1955년 가을 남미의 에콰도르의 정글에서 고안되었으며 남미의 인디언 중에서 가장 호전적인 아우카 보족에게 접근하는 것이었다. 수세기 동안 아우카 족이라면 소름끼치는 이야기의 주된 소재였으며 스페인 정복자들, 카톨릭 사제들, 장사꾼들, 석유 탐사 자들 등 모두가 이 아우카 족의 희생물이 되었다. 아마 수백 명이 살해되었을 것이며 사실 아우카족의 지역에는 아무도 살 수가 없었다.
1942년 쉘 석유회사의 직원 8명이 살해당했다. 바로 이 사건이 5명의 젊은 선교들의 마음을 끌었다. 그런 부족을 그리스도께 인도한다면 얼마나 영광스런 일이 되겠는가! 다섯 명의 선교사들을 보면 네이트 세인트는 휘튼 대학 출신으로 항공선교회의 비행사로서 1948년부터 에콰도르에서 7년을 아내와 함께 사역했으며, 피트 플레밍은 워싱턴 대학교 석사학위를 받고 성경 교수사역을 준비 중 휘튼 대학을 졸업하고 에콰도르 선교사로 준비 중인 짐 엘이오트를 만나 뜨거운 선교적 열심에 감동되어 1952년 둘 다 독신으로 선교사가 되어 남미로 왔다. 얼마 후 둘 다 결혼하였다. 같은 해에 에드 맥컬리도 아내와 같이 에콰도르에 도착했는데 그도 휘튼 대학 출신이었다. 로저 유드리안은 노스웨스트 대학을 졸업하고 1953년 아내와 어린 딸을 데리고 선교사로 왔다. 그들은 이 계획을 거의 극비에 붙이고 비밀리에 진행했으며 암홀ㄹ 개발해 단파 라디오를 통해 연락했다.
1956년 1월 3일 목요일 오전 6시 네이트가 한 사람씩 실어 날랐다. 네이트와 피트는 기지로 돌아갔다가 금요일 아침에 다시 강변에 착륙했다 드디어 아우카족 3명을 만나 선물을 주었더니 기뻐하며 받았고 호의를 보였다. 토요일도 평온하게 지났다. 주일 아침 네이트가 비행기로 정찰해보니 아우카족의 무리가 강변의 선교사들을 향해 오고 있었다. 그는 강변에 잠시 착륙하여 5명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지에는 12시30분에 통신을 하고오후4시30분에 연락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연락이 없었다. 연락이 계속 없자 다른 선교사들과 정부의 수색대가 조직되었다. 타임과 라이프지 는 특파원과 사진기자를 보냈다. 공중 수색에서 두 명의 시체를 보았으나 수색대가 도착하여 부패된 네 구의 시체를 최종 확인했다. 아직까지 창이 꽂혀 있었고 한 시체는 떠내려 간 것 같았다. 결국 아우카 계획은 실패로 끝났지만 선교노력은 끝나지 않았다. 계속 항공선교회는 아우카 족에게 선물을 보내주었다. 아우카족의 복음화는 일하게 시작되었고 드디어 2년 후 네이트의 누이 레이첼과 미망인 엘리오트에 의해 복음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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