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은영 2014. 2. 21. 15:21

폭설

 

 

  류윤모

 

 

 

기개높은 선비의 풍모로 노송위에 내리는 눈

그립다, 솔숲에 내리는 눈

천실만올로 끊어질 듯 이어지는

중모리 중중모리 휘모리의 북장단으로 마구 퍼붓는 눈

빈어깨로 맞고 싶다

흰옷의 무리들 볏단처럼 쓰러져간

지리산 골짜기 어디쯤이나 쩌렁쩌렁한 상림숲 언저리께 가서

게으른 눈구경이나 실컷 하고 싶다

구불구불 솔숲에 내리는 눈이나 시름없이 바라보다가

북풍에 언 몸 허름한 주점에 들러 막걸리 한잔에

얼큰한 생태탕 한그릇으로 녹이고 싶다

눈 오는 날이면 고삐 풀린 내 역마살 앞서 달려

이글거리는 장작불 어혈든 가슴에 재우고

남도 어디쯤 귀양가 핍박 받던 선비의 풍모로

북풍한설 뒤집어쓴 푸른 정신의 소나무 한그루

차가운 이마 속으로 들어오신다

생각만 해도 반가운 손님 맞이에 누추하던 마음의 방이 환하다

 

 

<류윤모 시집' 내 생의 빛나던 한 순간'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