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에 살던 도둑
그 집에 살던 도둑
박청호
우물에 넣어두었던 달을 도둑맞는
사건이 발생했다
양수기로 물을 다 퍼내고
후레쉬를 비췄다 달이 웅크렸던
자리 화석처럼 우물 벽에
도장 찍혀 있고
토끼들이 울고 있었다
도둑의 자루에는 동물둘이 들어갈
틈이 없었나
아직 어린 것들이었다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
손 꼭 잡고 순결을 피로 갚았던
그 밤에 이런 끔찍한, 그녀는
내가 꿈만 꾸며 놀아났기 때문이라고
집중성토! 꿈에서는 텅 빈 집을
해매었다 왜 그랬을까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었는데
갑자기 주인이 재림해서 집 한 채를
물려줄 것 같다 어서
우물을 짊어지고 여기서 떠나요
그녀가 자꾸 나를 세상의 밖으로
밀어낸다
한바퀴만 더 돌면 천년이 끝장날 거야
연약한 몸뚱어리에 보석을 잔뜩 박고
떠난 달을 향해 애걸복걸
뜻밖의 불로소득에 희희낙락
행복한 도둑에게
그녀를 조공으로 바치는 것으로
나는 사건을 일단락짓다.
진흙 우물이라도 지켜낼 욕심에서
토끼들은 또 어쩌고
1967년 부산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과 및 동 대학 예술대학원 졸업
1989년 ≪문학과비평≫에 12편의 시를 발표하여 시단에 데뷔
199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부문에 <한 착한 남자의 불행>이 당선
1996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단 한편의 연애소설>을 발표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
2002년 대산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시집 <치명적인 것들> 문학과지성사 1995
소설집 <단 한 편의 연애소설>, <소년 소녀를 만나다>, <질병과 사랑>, <사흘 동안>
장편소설 <그가 나를 살해하다>, <갱스터스 파라다이스>, <사랑의 수사학> 등
현재 순천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소설 창작을 가르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