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마을/좋은 詩 감상

가문동 편지 / 정군칠

파라은영 2009. 1. 15. 19:26

가문동 편지 / 정군칠


낮게 엎드린 집들을 지나 품을 옹송그린 포구에
닻을 내린 배들이 젖은 몸을 말린다
누런 바다가 물결져 올 때마다
헐거워진 몸은 부딪쳐 휘청거리지만
오래된 편지봉투처럼 뜯겨진 배들은
어디론가 귀를 열어둔다

저렇게 우리는,
너무 멀지 않은 간격이 필요한 것인지
모른다 우리가 살을 맞대고 사는 동안
배의 밑창으로 스며든 붉은 녹처럼
더께진 아픔들이 왜 없었겠나
빛이 다 빠져나간 바다 위에서
생이 더욱 빛나는 집어등처럼
마르며 다시 젖는 슬픔 또한 왜 없었겠나

우리는 어디가 아프기 때문일까
꽃이 되었다가 혹은 짐승의 비명으로 와서는
가슴 언저리를 쓰다듬는 간절함만으로
우리는 또 철벅철벅 물소리를 낼 수 있을까

사람으로 다닌 길 위의 흔적들이 흠집이 되는 날
저 밀려나간 방파제가 바다와 내통하듯
나는 등대 아래 한 척의 배가 된다
이제사 너에게 귀를 연다





[감상]

가문동 포구에
나란히 서 있는 배들은 그리운 편지입니다
닻을 내린 배들이 멀지 않는 간격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서 있습니다
저렇게 우리도 간격이 필요한가봅니다
너무 편안한 관계라서 부딪쳐 아프다 했지요
한번 씩 파도가 칠 때마다
밑창을 다 읽은 편지 귀퉁이가 잘려 나갔지요
아무도 슬프다. 슬프다.
말하지 않았지만 우린 슬퍼요
우리,
비명 지르지 않았지만
바다의 울음 소리가 들려요
철썩, 처얼썩
꽃이었다가
짐승이었다가 웃음이 되기도 하다가
울고 싶어지는 우리는
포구에 묶인 간절한 그리움 하나
넉넉하게 풀어주면
하나되어 철벅철벅 물소리를 낼 수 있을까요
방파제가 바다와 편지를 주고받듯이
포구에 묶인 배는 바다가 보고 싶은 거라고
당신이 무척 생각났던 거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양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