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의 행복 - 하나 -
오래 전, 수업시간에, 지금은 계시지 않는 은사 한 분이 홍차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다방에 가서 홍차를 주문하면, 한번 우려낸 차를 찻잔에 담가 주더라고 하시면서 몹시 섭섭한 안색이셨다.
그때까지 나는 홍차 맛을 본 적이 없으면서도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번도 맛보지 못한 홍차에 대한 기대를 어떻게 가지게 되었는지, 사리에 맞게 설명할 수는 없다. 나는 밝그레하고 맑은 액체가 담긴 오목한 홍차 잔에서 그럴듯한 향기가 나리라는 것을 상상만으로도 알 수 있었고, 그 냄새와 맛을 끔찍이 좋아할 것까지도 믿고 있었다. 선생님 말씀을 듣고 나니, 언젠가는 흰 천이 덮인 테이블에서 홍차 향기를 맡고 싶은 내 어리석은 소원이 거저 이루어지지는 않으리라는 예감에 지레 불만스러웠다.
학창시절의 도회지 거리에는 흔한 것이 다방이었다. 다방에서 주는 홍차는 종이 주머니에 담긴 것 뿐이었는데 포장에는 카이제르 콧수염을 기른 마도로스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몇번 다방에서 같은 그림의 홍차를 마셔보아도, 내가 일찍부터 기대하던 홍차맛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차를 시킬 때마다 떫은 맛이 나는 홍차를 마지못해 마시면서, 그 전에 들은 은사의 말씀이 떠올라 마음은 차맛보다도 씁쓸해지기 예사였다.
직장 동료가 해외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홍차를 구했다고 자랑하며 그의 연구실로 초대를 했을 때만 해도, 오래 전부터 품어온 홍차의 꿈을 혹 이룰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새로운 기대를 안고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는 양철 용기에 든 홍차를 꺼내 끓인 물에 담그더니 한참을 기다리게 했다. 걱정이 된 나는 그렇게 오래 두면 차맛이 떫어진다고 귀뜸을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는 오래 우려내야만 값을 치른만큼 본전을 찾을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에게는 평소에 차를 우릴 때 차숫갈로 눌러 짜는 버릇이 있는 것을 아는 나로서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언제부터라고 말할 것도 없이, 나는 오랫동안 차하고는 인연이 멀다고 스스로 자처하며 살아왔다. 식당에서 식후에 차를 주겠다고 해도 고개를 가로 젓는 습관이 굳어져 있을만큼 차에 냉담했다.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했던가. 내 궁색한 처지를 안 친구가, 어떻게 구했는지 모르나, 홍차를 한 아름 안고 집에 왔다. 그 옛날 다방에서 보던 상표였다. 그런데 포장에는 카이제르 수염을 기른 마도로스가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꽃처럼 고운 색깔로 다듬어진 아름다운 포장이었다. 한 상자만 해도 좋을 것을, 꾸러미를 풀어 보니 색깔도 다양한 상자가 여럿이었다.
나는 그 순간 행복하면서도 불안했다. 첫째, 내 아쉬움을 달래주려고 선물을 준비한 우정에 가슴이 물컹해졌다. 그 다음은, 그런 물건을 처음 대하는 나로서는 친구가 바라는만큼 그 맛을 즐길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기에 다소 불안해진 것이다. 아름다운 포장을 뜯지도 않은 채 이틀이 지났다.
숲에서는 이른 아침에 비둘기가 구구거리더니, 반짝 해가 나자 매미가 기다렸다는 듯이 시원하게 한 소리 했다. 내일 모레가 입추라 그런지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도 한결 상쾌했다. 아침을 먹고 나서 홍차를 달라고 했다. 살짝 우려낸 물 가까이 코를 대고 냄새부터 맡았다. 은은한 향기가 가볍게 코끝을 지나간다. 부드럽다! 요즘 담배 포장과 광고에 상투어로 쓰이는 마일드.. 바로 그것이다. 흰 가루설탕을 조금 넣어 한모금을 맛본 뒤에, 비로소 오랜 소원이 이루어진 것을 알고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오래 전에 어느 책에선가 '차 한 잔의 행복'이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때는 그 글이 나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로 여겨졌었다. 수필을 읽은 기억도 희미해진 지금, 비로소 차 한 잔의 행복이 남의 일이 아닌 바로 내 삶이 되었다. 일찌기 중학시절에 꿈꾸던, 붉은 색 나는 맑은 차에 대한 꿈이 반 세기나 지난 뒤에 이루어질 만큼 커다란 소원이었다는 말인가.
차를 구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차를 즐기기 위한 준비에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다. 세상이 일찍부터 차를 즐길만큼 편하지 않았거나, 내 삶이 질좋은 차를 찾아 나설만큼 여유를 얻지 못했던 것이다. 오래 걸리긴 했지만 마침내, 어떤 사람들처럼 나도 차 한 잔의 여유를 찾았다. 아니 차 한잔의 행복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좋다. '차 한 잔의 행복'이 그냥 차 한 잔이 아니라 곧 삶을 말하는 것이라고 일찍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내 것이 되기까지는 참으로 오래 걸렸다. 그리고 이 행복은 오랜 우정으로부터 온다는 진리도 이제 겨우 알게 되었다.
|